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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간과 공간

죽음이 개인에게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의 죽음은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온다. 모든 나라마다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의식이 독특하게 남아있음은, 이러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나라별로 차이가 큰 이러한 의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의례이다. 죽은 자와 산자의 갑작스런 작별은 삶의 덧없음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죽은 자를 애도하면서 온전한 작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일정한 시간을 주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3일장을 지내는 것도 3일이 작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불교에서 49일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망자가 저승에 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죽음이 주는 아픔에서 산자들이 벗어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공간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상 공간이 아닌 별도의 특별한 공간에, 망자의 사진을 앞에 두고 모두 엎드려 절을 하면서 작별한다. 사는 터전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그동안의 소식을 묻고, 죽은 자를 매개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면서 쌓인 것들을 풀어내는 상장례 공간은 현실과는 다른 질서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의례가 진행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한국의 전통적인 상장례 의식은 낯설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이웃 사람들 얼굴이지만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과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영화 축제 포스터

전통적인 상장례는 죽음을 맞이하고 확인하는 초종(初終), 시신을 목욕시킨 후 옷을 갈아입히고 관에 넣는 습렴(襲殮), 주검을 땅에 묻거나 불에 태워 처리하는 치장(治葬), 그 이후 올리는 제사를 이르는 흉제(凶祭)로 진행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는 잘 보여준다. 이 과정은 작별의 과정으로, 엄숙함을 통해 죽은 자를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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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사람의 죽음을 떠나보내는 과정은 이승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죽은 자를 매개로 하여 산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고, 그 상처와 관련이 있는 주위 사람을 살펴보고 그것을 치유하면서 다시금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한국 영화의 명장 임권택이 감독한 영화 <축제>는 이러한 죽음의 의미를 잘 알려주는 명작이다. 저명한 작가인 준섭(안성기)이 어머니 장례를 치루면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의 모습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상처의 치유가 우리 삶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임을 제시한다. 치유의 과정이 어머니의 장례식이라는 것에서, 죽음이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 영화에서 장례식과 별도로 이어지는 동화는, 할머니가 점점 어린이로 변해가는 과정을 ‘나이를 나눠주는 것’으로 표현한 바 이는 결국 어머니의 사랑을 나눠주는 의미가 되어, 어머니는 자기의 장례식까지 자식을 위한 축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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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을 <축제>라고 한 것은,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고, 그간 쌓인 갈등이 풀어져 다시 핏줄로 묶인 가족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장례식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이 주는 슬픔과 이별의 의식이 장례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켠에 숨어있던 아픔을 끄집어내 그를 보여주고 그것이 준 상처를 햇빛 아래 노출하여 아물게 하는 것임을 아는 순간 장례식은 축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삶과 죽음 그리고 남은 이들의 향연’이라고 적어둔 것이 이 영화의 주제가 된다. 사람은 삶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죽음을 마주하고 떠나보내면서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 법, 이 영화는 그래서 축제이자 향연의 기록이 된다.
특히 이 영화는 요즘 보기 어려운 한국의 전통적인 상장례 의식을 담고 있어 관심이 간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죽음을 맞고 현대식 장례식장에서 죽은 자를 떠나보내지만, 불과 30 여년 전만해도 한국인들은, 죽은 자가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인 집에서 상장례를 치렀다. 영화에서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슬프면서도 묘하게 활기가 넘치는 배경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과 집을 제시한 이유이다. 놀음판이 벌어지고, 부조금을 슬쩍 해가는 사람들도 있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장례식이 삶과 죽음이 만나는 혼돈의 공간임을 알려준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 한편에서는 반가워하면서, 한편으로는 묵은 감정을 내세우는 것도, 죽음이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매개가 되기 때문이다.
밤새 걸판지게 놀면서 장례식을 치루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간은, 햇살이 비치는 일상의 시간이 아니라 어둠이 지배하면서 묵은 하루를 보내고 새로운 하루를 맞는 비일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듯이 우리 삶은 죽음을 넘어서 이어져야 함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시간이 장례식의 시간이다. 밤을 새우는 것은 단순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세워 삶을 잇게 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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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지금은 볼 수 없는 상복으로 굴건제복이 나온다. 남자들은 머리에 삼베를 재료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두건을 쓰고, 두건을 고정시키는 상관을 두른다. 여성들은 천을 머리에 얹고 상관을 두른다. 남녀 모두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든다. 이를 일러 굴건제복이라고 하는데, 영화 <축제>에서 죽은 자의 자식들이 이 옷을 입고 있다. 죄인이면서 부모에게 효를 드려야 함을 보여주는 의복이다. 죽은 자에게 옷을 입히는 염습 과정, 죽은 자를 싣고 장지로 상여가 나가는 과정, 무덤을 만드는 과정 등은 전통적인 장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알려준다. 하나하나 설명하면 글이 길어지고 지루해지는 법이니, 그냥 영화를 따라가면서 우리네 전통 장례식의 진행 과정을 알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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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모든 장례식이 끝난 후 가족사진을 찍는 부분에서 정점을 찍는다. 주인공을 취재하러 온 기자의 요청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든다. 이때 가장 아픔이 컸고 가족들과 겉돌던 용순(오정해)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는 장면은, 장례식이 축제가 되었고 마침내 가족들의 아픔이 치유되었음을 알려준다. 한 장의 사진에 함께 지금의 모습을 남긴 이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포함된 것이다. ‘아 무슨 초상났냐.’라는 문상객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이들의 모습에서 방금 장례식을 겪었으면서도 그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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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면서도 상장례의식과 제사는 철저하게 지켰다. 산 사람도 살기 어려운데 죽은 자를 떠나보내고 추모하는 일련의 의식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를 통해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새롭게 인식했고, 복잡하고 다양한 의식이지만 죽은 자를 온전하게 떠나보내면서 그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다짐을 가졌다. 그동안 쌓였던 것들을 풀어내면서 갈등에서 화해로, 다툼에서 포옹으로 나갔다. 한국인들은 슬픔의 의식을 한바탕 잔치로 만들 줄 아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통해 한국의 전통적인 상장례 의식을 살피 수도 있지만, 한국의 상장례 의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한국의 일생의례를 잘 보여주는 디지털 헤리티지(Digital Heritage)로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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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 홍태한 (전북대학교 연구교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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