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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지역의 까 후에
CD7_베트남 중부지역의 까 후에\n\n까 후에(Ca Hu?; 후에 노래 부르기)는 베트남 중부 도시인 후에(Hu?)에서 연행되는 독특한 전통 실내악이다. 까 후에는 궁중음악에서 유래했다. “응우옌 왕들과 대비들을 위해 연주하던 실내악이 있었다. 1” 까 후에는 처음에 왕족, 고위 관료, 부자들을 위해 연주하던 실내악이었다. 이후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까 후에는 점점 다양한 후에 민속음악 양식의 영향을 받게 됐다.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는 예를 들어 ‘반 응으(b?n Ng?) 10곡’ 또는 ‘탑 투 리엔 호안(Th?p th? lien hoan)’이라고도 하는 ‘반 따우(b?n Tau) 10곡’이 제물 봉헌을 위한 의식이나 특별 행사에서 궁중 악사들에 의해 궁중에서 연주되는 등 다시 궁중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까 후에는 지도층과 일반 대중의 예술 작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특별한 음률을 만들어 냄으로써 민속음악과 궁중음악의 정수를 하나로 섞어 놓았다. 이 때문에 까 후에는 과거에 새해맞이 의식 또는 승진 축하나 개업 행사 등 기쁜 일이 있을 때 고위 관료, 지도층, 후에 주민들의 집에서 연주됐다.\n\n과거에는 지도층, 고위 관료, 학자나 아름답고 뜻 깊은 노랫말을 지을 수 있는 사람만 까 후에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면서 연주 음악과 노래를 통해 생각을 공유했다. 한 사람의 노래와 악기 연주는 다른 사람의 노래와 작곡에 영감을 주는 형식이었다. 까 후에 참여자들은 또한 관객이었다.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재능을 존경하며 즐겼다. 최근에는 전통 까 후에 이외에 무대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까 후에가 연주된다. 일반 대중을 위한 까 후에는 상업 음악처럼 작곡가, 연행자, 관중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둔다. 실내악 까 후에의 특징인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은 이제 개인의 집에서 연주되는 까 후에에만 남아 있다.
Viet Nam 2015 -
카르나타크(KARNATAK) 전통 음악 : 코투르 라자라트남의 나가스바람 연주
CD9_카르나타크(KARNATAK) 전통 음악 : 코투르 라자라트남의 나가스바람 연주\n\n코투르 라자라트남(Kottur Rajarathnam)은, 더블 리드가 달린 원뿔 모양의 리드파이프 연주자이자 인도 남부지역에서 나가스바람(nāgasvaram)으로 알려진 악기를 연주하는 장인이다. 그는 페리야 멜람(periya mēIam, 타밀어로 ‘큰 합주단’이라는 뜻)으로 알려진 기악 합주단의 단장이다. 이 합주단은 수 세기 동안 신께 재물을 바치는 의례를 지내거나 결혼식이나 기타 일생의례에서 흥겨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음악을 만들어왔다. 실제 결혼식에서 페리야 멜람 합주단은 결혼식이 진행되는 단계마다 전통 음악을 부르는 여성들의 반주를 한다. 연주하는 악기들이 야외 공연에 알맞기 때문에 페리야 멜람 합주단의 최고의 연주는 밤에 주요 사원을 둘러싼 거리에서 들을 수 있다. 사원 악사들과 합주단은 사원 활동의 일환으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밤새도록 길거리 행진을 하기도 하며, 실내에서 콘서트를 하거나 결혼식을 비롯한 일생의례를 위해 실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연주자들은 실내 음향에 맞게 자유자재로 음을 변경한다. \n\n코투르 라자라트남과 함께 연주하는 사람은 두 번째 나가스바람 연주자로 코투르 라자라트남의 연주를 따라가며 공연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사람은 능숙한 드럼 연주자로 타빌(tavil, 때로는 타불(tavul)로 알려짐)을 연주한다. 가죽을 두 번 입힌 드럼을 ‘타빌’이라 하는데 그는 타빌 연주를 위해 왼손에 채를 잡고 오른손 손가락 네 개는 골무를 낀다. 그러면 악기 특유의 밝고 날카로운 타악기 소리가 난다. 타빌은 음의 밝기, 음량, 찌르는 듯한 음색 등에서 나가스바람에 필적한다. 탈람(tāḻam, 손에 쥐고 연주하는 작은 청동 심벌즈)은 연주되는 리듬의 주기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리드가 없는 박스형 악기인 쿠루티페티(curutipeṭṭi)는 나가스바람 연주에 필요한 음색을 만들어준다. \n\n20세기 중반 이후로 페리야 멜람 합주단을 구성하는 악기들은 변화가 있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변화는 나가스바람과 타빌의 음 높이가 낮아졌고, 나가스바람과 타빌은 깊은 소리를 내기 위해 크기가 커졌다는 것이다.\n\n이 앨범에 수록된 곡에서 코투르 라자라트남과 그가 이끄는 합주단은 네 개의 라가, 즉 선율을 선보이는데 키르타나 (kirtana, 의식곡 장르) 네 곡과 카르나타크(Karṇāṭak) 음악의 특징적인 세 종류의 즉흥 연주를 들려준다. 카르나타크 음악에서 즉흥 연주는, 박자가 없는 멜로디의 즉흥 연주와 정해진 곡의 연주 뒤에 나오는 박자가 있는 즉흥 연주가 있다. 이 앨범에 실린 박자가 없는 즉흥연주는 알라파나(ālāpana, 산스크리트어로 ‘대화’라는 뜻)라고 하며 박자 없는 멜로디로 라가를 연주한다. 그리고 두 종류의 박자가 있는 즉흥 연주는 스바라 칼파나(svara kalpana, ‘음표 상상’이라는 뜻)와 타빌의 즉흥 독주 연주다. 스바라 칼파나는 정해진 곡이 끝나고 나서 연주된다. 스바라 칼파나는 연속적인 스바라, 즉 음표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교적 느리고 짧은 악장에서 시작해서 길고 빠른 악장으로 진행된다. 스바라 칼파나 악장은 탈라(tāḷa) 주기와 비교했을 때 시작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항상 곡의 특정 부분으로 돌아와 마무리된다. \n\n이 앨범에서 코투르 라자라트남은 트야가라자(Tyagarāja)가 만든 곡 중 세 개를 연주했다. 트야가라자는 걸출한 작곡가로 짧은 곡부터 종교 모임을 위한 곡 그리고 아주 세련된 곡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라가로 된 단독 곡을 만드는 흔치 않은 작곡가로 유명하다. 이 앨범에 실린 라가 바가디스바리 (rāga vāgadīśvarī)로 된 곡이 좋은 예이다. \n\n트야가라자(1767~1847년)는 브라만 사제 계급 작곡가였다. 그의 가족은 안드라프라데시(Andhra Pradesh) 주 출신이지만 탄자브르(Tañjāvūr)에 거주했다. 트야가라자의 할아버지 지리라자(Girirāja)는 탄자부르의 궁중 시인이자 악사였다. 트야가라자는 산스크리트어뿐만 아니라 민족의 언어인 텔루구어(Telugu)로도 키르타나를 만들었다. 트야가라자는 음악가와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3대 음악가로 칭송 받는다. 그의 음악적 재능과 인기는 이전 음악가들의 성취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대중들의 마음속에서 트야가라자는 카르나타크 음악 작곡가 중에 가장 뛰어난 인물로, 그를 추모하는 연례행사 (아라다나, ārādhana)에는 수백 명의 음악가와 수천 명의 관중이 몰리며 방송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행사를 즐기고 있다. 트야가라자의 인생은 영화로 만들어졌고 수없이 많은 바가바타르(bhāgavatar)가 계속해서 그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트야가라자의 카리스마와 뛰어난 음악 작품들은 그의 음악을 갈고 닦으며 연습하는 후세대 가창자와 악기 연주자들을 통해 전승되었다. 트야가라자의 음악은 그의 음악에 매혹된 무용수들을 통해 춤의 영역에까지 발을 넓혔다. 트야가라자의 음악이 원래 춤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몇 편의 악극을 쓰기도 했다. 트야가라자는 궁중 악사 제안을 확실히 거절했는데, 이는 궁중악사들이 종종 해야만 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칭송하는 일’을 정말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그는 청빈한 삶을 살면서 음악을 종교적인 헌신(바크티, bhakti), 특히 그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라마(Rāma)신에 대한 헌신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n\n트야가라자가 좋아했던 키르타나는 2~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앨범에 실린 키르타나는 전부 팔라비(pallavi), 아누팔라비(anupallavi), 카라남(caraṇam)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악기 연주 때문에 분명하게 전달되지는 않지만 팔라비에서는 곡의 의미를 설명한다. 아누팔라비에서는 라가를 전개하면서 멜로디를 높은 옥타브까지 끌어 올린다. 카라남에서는 대게 중간 멜로디를 연주하고 낮은 옥타브를 선보인다. 곡을 마무리하면서 팔라비의 후렴을 반복한다. 트야가라자가 만든 키르타나의 공통된 특징은 길이가 긴 카라남의 후반부에 아누팔라비 멜로디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n\n이 앨범에 수록된 음원은 나가스와람 연구의 저명한 학자이자 방대한 저술 활동도 한 요시타카 테라다(Yoshitaka Terada)가 남긴 영상 기록물에서 발췌한 것이다.
India 2016 -
네팔의 영창가
CD5_네팔의 영창가\n\n네팔의 모든 영창가는 힌두교 및 불교의 신에게 바치는 노래다. 사람들은 영창을 통해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따라서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영창을 하면서 모든 존재의 선함을 기원하고 이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유한한 삶에서 불멸로, 거짓에서 진실로 그리고 보편적인 인류애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신에게 기도한다. 각자의 삶을 신의 사역에 헌신하며 모든 존재에게 선을 베풀고 항상 자신의 욕심보다 타인의 필요를 우선시 함으로써 언젠가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되기를 소망한다.
Nepal 2016 -
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와 발라드 2집: 자가르와 알하 서사시
CD5_구비서사시(口碑敍事詩)와 발라드 2집: 자가르와 알하 서사시\n\n서사시, 발라드, 설화 등 구비 서사 전통은 의례, 스토리텔링, 지역 신화 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면서 인도 무형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인도 구비서사시는 대부분 가창의 형식으로 표현되지만 그중에는 암송이나 산문의 형태도 있다. 운율도 다양하고 운율마다 정의와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예를 들어, 알하를 노래 부르는 운율은 ‘알하 츠한드(Alha Chhand)’ 라고 한다. 구비서사시를 연행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사건을 묘사하는 그림을 보여주며 서사하는 이야기도 있고, 연극으로 표현하기도 하며 예를 들어 모내기할 때 연행하는 팟다나 (paddana)의 경우에는 가창으로 표현한다. 스튜어트 블랙번 (Stuart Blackburn)과 조이스 플루키거(Joyce Flueckiger)는 인도 구비서사시를 전쟁에 관한 것, 의례에 관한 것, 사랑에 관한 것 등 세 가지로 구분했다. \n\n서사시 중에는 여러 개의 사건과 인물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개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인도 구비서사시는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연자, 청중, 참여자 모두가 같은 공동체 소속이기 때문이다. 의례와 연관이 있는 서사시도 있고, 서사시의 연행이 의례 자체인 경우도 있다. 인도 서사시의 연행과 연행의 지원에서 계급 제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가 이러한 지역 서사시에 흡수되어 지역 서사시의 연행자가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영웅이나 신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인도의 저명한 민속학자 코말 코타리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지역 서사시가 애초의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날 때 발생한다. 이 앨범에서 서사시 공연의 전체를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수록된 기록물을 통해서 인도 구비 서사 전통의 운율, 가창 형태, 가사 등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앨범에는 세 편의 구비서사시가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부분은 전체 공연의 일부로, 각각 해당 분야에 대한 방대한 연구 성과가 있는 전문가가 기여한 것이다. 팟다나는 피터 클라우스(Peter Claus), 난다 데비 자가르는 윌리엄 삭스(William Sax), 알하는 카린 스초머(Karine Schomer)가 기여했다. 이 앨범에는 서로 다른 전통과 서로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구비서사 작품 두 개를 발췌해서 담았다.
India 2016 -
핫 반 (의례 음악)
CD5_핫 반 (의례 음악)\n\n‘반(V?n) 가창’이란 뜻의 핫 반(Hat v?n)은 베트남 킨족(Kinh)의 지역 종교인 뚜푸(T? ph?) 신앙과 관련된 독특한 전통 음악이다. 핫 반 또는 쩌우 반(Ch?u v?n)은 신에게 무엇인가를 고하는 노래를 뜻한다. 종교에서 이 노래는 ‘신을 칭송하는 노래’라는 뜻의 깜 까 쭉 타인(C?m ca chuc Thanh)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부처는 경전을 사랑하고 신은 노래를 사랑한다”는 글귀가 담긴 책이 있다. 핫 반은 노래와 악기 반주를 함께하는 음악으로서 레퍼토리와 음률이 다양하고, 의례 음악 연주에서의 엄격한 규율은 핫 반을 듣는 이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 주는 베트남 전통음악 전문가가 되게 했다. 뚜푸 신앙(4신 신앙)은 핫 반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뚜푸 신앙에서는 하늘, 땅, 물, 산 등 우주의 4개 장소에 존재하는 신을 언급한다. 이들 신은 계급을 달리한다. 사원의 최상위에는 옥황상제의 아버지가 안치돼 있다. 그 아래로는 땀 따오 타인 마우(Tam toa Thanh M?u), 응우 비 브엉 (ng? v? v??ng Quan), 뜨 비 쩌우 바(t? v? Ch?u ba), 응우 비 호앙 뜨(ng? v? Hoang t?), 뜨 푸 짜인 꼬(T? ph? thanh Co), 뜨 푸 타인 까우(T? ph? thanh C?u), 응우 호(Ng? H?), 오응 롯(ong L?t)이 있다. 마우 리에우 하인(M?u Li?u H?nh)은 중심 역할을 하는 신으로 여기고 있다. 마우 리에우 하인은 베트남의 4신 가운데 하나가 되기 전에 고향과 이름이 있는 땅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n\n뚜푸 신앙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은 꿍반(cung v?n)으로 불린다. 꿍반 역할을 맡은 사람은 5~7년의 오랜 기간 동안 훈련은 받아야 한다. 꿍반은 사원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한-놈(Han-Nom) 글을 짓는 데 재능이 있어야 하고, 숭배 의례와 핫 반에도 능숙해야 한다. 꿍반의 역할은 가족 구성원에게만 전수된다. 핫 반 음악은 보통 꿍반 두 명이 연행하는데 한 명은 달 모양 류트인 응우옛(nguy?t), 다른 한 명은 타악기를 각각 연주한다. 이 가운데 한 명 또는 두 명 모두 노래를 할 수 있다. 규모가 큰 의례에서는 핫 반 연주단의 규모가 16현 치터인 짜인(tranh)이나 베트남 전통 2현금인 니(nh?) 또는 플루트 등의 4~5명이 추가될 수 있다. 응우옛은 중국의 악기 예우낀(yeuqin; 중국명 웨친, 月琴)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예우낀과 비교하면 8~11개의 프렛이 있어 목이 길다. 응우옛의 목에 있는 프렛은 10개인 것이 일반형이다. 응우옛의 2개 줄은 과거에 명주였다가 오늘날에는 나일론으로 만든다. 짧은 줄은 저이 띠에우(day ti?u), 긴 줄은 저이 다이(day đai)라고 부른다. 달 모양 류트 응우옛은 대개 저이 방(day b?ng; 5음계)과 저이 레찌(day l?ch; 4음계)로 조율된다. 드물게 저이 또 란(day t? lan; 단조 7음계)과 저이 송 타인(day song thanh; 1옥타브)으로 조율되기도 한다.
Viet Nam 2015 -
베트남 전통극음악
CD9_베트남 전통극음악\n\n전통극은 베트남 전통음악의 등장을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베트남 전통극은 주로 킨족(Kinh)과 커메족(Kh? me), 눙족(Nung) 등 몇 몇 소수민족이 연행했다. 역사가 깊은 전통극으로는 킨족의 고전극 뚜옹(Tu?ng)과 전통 경가극 째오(Cheo) 두 가지가 있다. 이러한 전통극은 문학, 회화, 음악, 춤, 희곡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뚜옹은 수세기에 걸쳐 베트남 북부지역에서 발생해 궁중에서 연행되다가 고위 관료의 음악이 되어 ‘핫 보이(Hat b?i)’ 또는 ‘핫 보(Hat b?)’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베트남 중부 및 남부 지역까지 퍼졌다. 뚜옹은 응우옌 왕조인 17~18세기에 중부 지역에서 완성돼 최고조로 발전했다. 그 당시 뚜옹은 왕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 의해 연행되었으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베트남 전체, 특히 중부 및 남부 지역 사람들의 정신생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여전히 중요했다. 뚜옹은 왕실과 일반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몇 안 되는 전통예술 가운데 하나였다.\n\n전성기에 뚜옹 연행자는 두 부류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뚜옹 타이(Tu?ng th?y; 표준 내용 및 연행 양식을 갖춘 뚜옹)이고 뚜옹 롱(Tu?ng rong; 반전문 연행자로 기능이 일부 부족하고, 주로 즉흥적인 공연을 함)이다. 뚜옹 시스템은 내용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되는데 뚜옹 포(Tu?ng pho; 막이 많고, 여러 날 연행되는 뚜옹), 뚜옹 도(Tu?ng đ?; 역사책에는 언급되지 않은 민속 이야기를 전하는 민속 뚜옹), 뚜옹 떤 터이(Tu?ng tan th?i; 새로운 소설 이야기를 전하는 뚜옹)이 해당된다. 뚜옹 응으(Tu?ng ng?;‘ 왕의 여흥을 위한 뚜옹), 뚜옹 꿍 딘(Tu?ng cung đinh; 왕실에서 연행된 뚜옹)이라고 부르는 특별한 뚜옹을 연행하기도 한다. 고전 뚜옹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왕을 보좌하라’를 주제로 하여 연행되는 애절한 영웅 느낌을 주는 극음악 전형의 뚜옹이다. 이러한 뚜옹 극은 팽팽한 긴장감이 넘치는 구조로 하여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순서대로 일어나는 베트남 동부 묘사 방식으로 연행된다. 심한 충돌과 대립이 이 극 전반에 흐르는 특징이다. 하나의 연극은 3막으로 이뤄진다. 1막에서는 등장인물 소개와 기본인 충돌이 전개되고, 2막에서는 갈등을 다루면서 악의 편이 승리하며, 3막에서는 충돌이 최절정에 이르고 정의 편이 승리한다. 이 극의 주인공은 애국 영웅들이다. 주요 고전 뚜옹으로는 선 하우(S?n H?u), 안 짜오 끼엠(An Trao ki?m), 땀 느 드오 브봉(Tam n? đ? v??ng), 다오 땀 쑤언 로안 짜오(đao Tam Xuan lo?n trao), 주엉 짠 뜨(D??ng Ch?n T?)가 있다.
Viet Nam 2015 -
베트남 남부지역의 실내악 던 까 따이 뜨
CD8_베트남 남부지역의 실내악 던 까 따이 뜨\n\n던 까 따이 뜨(đ?n ca tai t?)는 베트남 남부지역 비엣족(Vi?t)만의 고유한 전통 실내악이다. 까 쭈(Ca tru), 까 후에(Ca Hu?) 등 베트남의 다른 전통음악과 비교할 때 던 까 따이 뜨는 ‘최근’의 전통음악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음악 연구자에 따르면 던 까 따이 뜨는 베트남 남부지역의 의례음악인 낙 레(nh?c L?)와 실내악인 낙 후에(nh?c Hu?)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19세기 중반에 생겨났다. 지난날 낙 레는 베트남 남부지역의 문화생활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연주곡으로는 군악 합주인 패 보(phe vo)와 클래식 합주인 패 반(phe v?n)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패 보는 북, 심벌즈와 베트남 오보에인 깬 버우(ken b?u)로 구성됐다. 패 반은 특히 꼬(co), 꼬 찌(co ch?), 꼬 째(co tre), 가오(gao) 등 2현금인 꼬(co) 형태의 현악기 4종류와 북인 쫑 낙(tr?ng nh?c) 및 원통형 작은북인 쫑 껌(tr?ng c?m) 같은 타악기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두 종류의 합주는 마을의 주요 축제에서 연주됐다. 하지만 결혼, 생일, 집들이와 같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행사에서는 타악기 없이 현악기로만 구성된 소규모의 패 반 합주가 연주됐다. 이러한 합주는 던 꺼이(đ?n cay)라고 불렸다. 격조 높은 풍류를 목적으로 16현 치터인 단 짜인(đan tranh), 달 모양 류트인 낌(kim), 나무로 아주 작게 만든 송랑(song lang) 등과 같은 현악기가 점점 추가됐다.\n\n음악은 점점 의례의 엄숙함을 벗어나 일상생활에 맞는 형식으로 바뀌어 갔다. 이것이 던 까 따이 뜨의 기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까지는 아직 던 까 뜨이 뜨가 정립되지 않았다. 1885년에 수도인 후에(Hu?)가 함락됐을 때 응우옌 왕조 왕실의 악사들이 후에 음악 전승을 위해 베트남 중부에서 남부로 이동한 것이 던 까 따이 뜨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때 던 까 따이 뜨는 후에 실내악을 받아들인 후에 레퍼토리나 연행 스타일 면에서 형태를 갖춰 갔다. 던 까 따이 뜨는 베트남 남부지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후에 던 까 따이 뜨는 현재 갖은 부침을 겪고 난 뒤에도 여전히 광범위하고 깊게 문화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가장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 바로 던 까 따이 뜨일 것이다. 이는 대중성과 학문성을 모두 포함하는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 던 까 따이 뜨의 특별한 예술 가치를 확인시켜 준다.20세기 중반 남부지역 동서부의 따이 뜨 음악가는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20곡을 선정했는데, 이 곡들은 박(B?c), 응(Ng?), 남(Nam), 오안(Oan)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선정된 20곡은 원곡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후로 따이 뜨 음율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만드시 이 20곡을 연주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Viet Nam 2015 -
페르가나 계곡의 무형유산: 카타 아슐라 (Katta Ashula)
카타 아슐라(Katta Ashula, 일명 '쟁반노래(patnis ashula)')는 페르가나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우즈벡 전통 노래 양식이다. 보통 2~5명의 공동 가창자들이 악기 없이 (손에 쟁반이나 접시를 들고) 부른다. 대게 높은 음역대에서 폭넓은 호흡으로 부르는데 특유의 복잡한 연행방식으로 여타 장르와 구분된다. 카타 아슐라는 고대 의례와 노동요謠, 비가悲歌, 애곡哀哭, 아욜구 노래(ayolg'u; 악기이자 노래 장르), 그리고 고대 아랍-페르시아 운율학 체계에 기초한 가잘(g'azal)의 고대적 낭송방식을 근간으로 탄생되었다. 보통 대규모 모임, 봄의 꽃 축제, 잔치 연회에서 불린다.\n\n10세기 후반부터 카타 아슐라에 새로운 성악-기악 양식, 솔로 가창자에 맞춘 유형들이 생겨났다. 에르카코리 카리몹(Erkaqori Karimov), 투르디알리 에르가솁(Turdiali Ergashev), 마르부바 삿토롭(Matbuva Sattorov), 조라혼 술토놉(Jo'raxon Sultonov), 마무르존 우조콥(Ma'murjon Uzoqov), 볼타보이 라자봅(Boltaboy Rajabov), 오리프 알리마흐수몹(Orif Alimahsumov), 팟토혼 마마달리옙(Fattohxon Mamadaliyev), 조라혼 유수폽(Jo'raxon Yusupov), 함로쿨코리 토라쿨롭(Xamroqulqori To'raqulov) 등이 큰 명성을 얻었다. 현재는 할리마 노시로바(Xalima Nosirova), 무노좃 욜치예바(Munojot Yo'lchiyeva), 이스모일 바호봅(Ismoil Vaxobov) 및 이스로일 바호봅(Isroil Vaxobov), 마흐뭇 토지보옙(Mahmud Tojiboyev)과 같은 가수들이 전문적 기교를 활용해 카타 아슐라를 부르고 있다.
Uzbekistan 2015 -
바스타르와 차티스가르 음악
CD7_바스타르와 차티스가르 음악\n\n인도 원주민 부족 공동체는 여러 어족에 속한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은 바스타르(Bastar)라고 알려진 곳과 그 주변 지역의 음악이다. 이 지역은 현재 행정구역으로 마디야프라데시 주(Madhya Pradesh)와 차티스가르 주 (Chhattisgarh)에 해당한다. \n\n이 앨범은 마리아(Maria) 족, 무리아(Muria) 족, 파르단 (Pardhans) 족의 음악을 골라 수록했다. 이들은 크게 곤드(Gond) 족에 속한다. 곤드어(Gondi)와 그 관련 언어는 드라비다어 족의 일부이며, 이 앨범을 들으면 인도 중부지역 부족 공동체의 무형문화유산을 엿볼 수 있다. 수록된 음원은 1978부터1982년까지 민족 음악가 로데릭 나이트(Roderic Knight)가 기록한 것으로, 현재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 부족 공동체의 면모를 볼 수 있다.
India 2016 -
네팔의 민요
CD3_네팔의 민요\n\n비록 젊은 세대에게는 덜 알려져 있지만 네팔에는 여전히 풍부한 민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민요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구전되어 왔다. 기록이나 문서로 남아있지 않은 여러 민요들은 이미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여러 민속학자와 음악가, 가수, 그리고 연구자들이 민요를 보급하기 위해 가장 희귀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민요들을 엮어 민요 가사 선집을 만들었다. 본 CD에서는 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Nepal 2016 -
아널드 베이크 1930년대 음향 기록물 1집 : 자장가
CD1_아널드 베이크 1930년대 음향 기록물 1집 : 자장가\n\n네덜란드 민족 음악가 아널드 아드리안 베이크(Arnold Adrian Bake)가 1930년대부터 인도에서 녹음한 기록물은 민족지적인 기록물 중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다. 아널드 베이크와 아내 코리 (Corrie)는 벵골(Bengal)지역에서 오래 머물렀지만, 벵골뿐만 아니라 인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인도 사람들의 노래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무형문화유산을 녹음했다. 베이크의 기록물은 노동요, 의식요(儀式謠), 의례 연행 등 다양한 일상생활의 소리를 아우르며 여성의 노래와 문화적 표현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1925년에 시작된 베이크의 인도 여행은 1955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 베이크는 인도뿐만 아니라 네팔과 스리랑카까지 여행 했으며, 그의 기록물은 현재 영국, 독일, 미국 등지에 보관되어 있다. 베이크는 1925년부터 1929년까지는 실린더에 기록했고 1938 년부터 1939년까지는 ‘테피폰(Tefifon)’이라는 기계에 기록했다. 이번 사업을 통해 디지털화된 기록물은 1938년부터 1939년 사이 테피폰으로 기록된 내용이다. 테피폰 기록물은 1982년 에 스풀(spool)에 옮겨져 민족음악연구센터(Archives and Rese arch Centre for Ethnomusicology)에 보관되었다. 베이크는 1938년부터 1939년까지 2년 동안 파키스탄 신드 주(Sindh) 에서 구자라트 해안(Gujarat Coast)을 따라 케랄라 주(Kerala) 까지 여행하면서 마하라슈트라 주(Maharashtra), 카르나타카 주(Karnataka), 케랄라 주 등의 지역에서 녹음했고, 몰디브와 스리랑카에서 작업한 기록물도 있다. 따라서 이 앨범에 소개된 노래는 주로 인도 서남해안 지역의 소리다. 역사적 가치가 크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소리를 선택하여 소개한다.\n\n자장가 앨범 -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내서 아이를 잠들게 하는 것은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행위로 어느 문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도에서 자장가는 아이의 탄생과 관련된 일생의식의 한 부분이기도 하여 의례적인 기능도 포함돼 있다. 인도 자장가는 의식요와 비슷한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 신(神)의 은총을 바라거나 신의 어린 시절을 노래하기도 한다. 크리슈나(Krishna) 신 등 신들의 탄생을 기념하는 의례에서 자장가 형식으로 만든 노래를 사용하기도 하고 이들 노래를 아이에게 불러주기도 한다. 이 앨범에 실린 자장가는 1903년대 후반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 녹음한 것으로, 범위가 좁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베이크의 기록물에 자장가가 여러 곡 있는 것을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의문이 생긴다. 베이크는 자장가를 일생의례 노래로 생각했는지,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자장가를 일상생활의 노래로 생각했는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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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지역 여성들의 목소리
CD6_산간지역 여성들의 목소리\n\n이 앨범에 목소리가 녹음된 여성들은 전문 음악가가 아니다. 이 앨범은 일상생활에서의 여성들의 노래를 담고 있다. 여성들의 노래는 노동요로 볼 수 있으며, 탈곡을 하거나 곡식을 빻거나 찧을 때 길고 힘든 노동의 지루함을 잊고 작업에 리듬감을 주면서도 외로움을 덜기 위해 부른다. 여성은 의례 연행, 서사시와 발라드 가창뿐만 아니라 출산, 결혼, 장례 등 일생의례를 위한 노래를 부르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결혼 노래는 인도에서 여성이 부르는 노래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시화와 도시로의 이주, 그리고 기계의 발달로 인해 여성의 노래라는 인도의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녹음된 노래와 텔레비전이 가창의 자리를 뺏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을 음향과 문자로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즉, 가족과 가족의 수호신을 위한 의례를 연행하는 주체인 여성의 목소리를 가정과 밭에서 기록하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이 앨범에는 히마찰프라데시(Himachal Pradesh) 주 캉그라 (Kangra)의 낮은 히말라야 언덕(‘눈의 땅’이라고 불림)과 우타 라칸드(Uttarakhand) 주 가르왈(Garhwal)의 히말라야 고지대 (‘북쪽 땅’이라고 불림)에서 녹음한 노래를 담았다. 상호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스야리(ghasyari) 노래, 가르왈의 쿠데르(khuder), 캉그라의 파카하루(pakaharu)는 주제가 비슷하다. 여성들이 결혼 생활의 고난, 남편의 부재, 친구 관계 등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관해 노래한다. 여성들의 노래는 악기 반주가 없다. 수록된 노래는 두 명의 여성 연구자, 키린 나라얀(Kirin Narayan) 과 라기니 데쉬판데(Ragini Deshpande)의 연구 결과에서 가져온 것이다. 캉그라 지역의 노래는 키린 나라얀이 기록한 노래로, 키린 나라얀은 수년 동안 캉그라에 있으면서 여성의 노래와 이야기를 연구했다. 여기 수록된 곡은 그녀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기록한 것이다. 라기니 데쉬판데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 9년 동안 가르왈의 차몰리에서 여성의 노래를 기록했다. 키린 나라얀이 인용한 산기타 데비(Sangita Devi)의 말처럼 “모두 노래를 할 수 있지만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노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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