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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ICH Elements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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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재 (靈山齋)
영산재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영산재는 모든 중생(衆生)과 영가가 부처, 불법과 승려를 숭앙하여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도록 돕기 위하여 거행된다. 영산재는 한국 불교에서 거행되는 가장 수준 높고 가장 큰 규모의 의식으로, 현세에서 부처의 세계를 표현하는 의식으로 법화경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산재는 참선과 수행의 수단이기도 하다. 영산재의 거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시련(侍輦) : 하늘과 땅의 영가와 모든 성인(聖人)을 맞아들여서 영가를 인도하는 불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성스럽게 의식이 거행되도록 한다. 2. 대령(對靈) : 의식의 주인은 영가, 죽어 있거나 살아 있는 것, 즉 모든 중생이다. 죽은 영가는 의식에 초청되고, 의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의식이 거행되는 이유를 듣고 불법에 따른 지침을 받는다. 죽은 이의 가족은 죽은 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의미로 음식과 술(법식)을 베푼다. 3. 관욕(灌浴) : 평정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영가의 3가지 업장을 씻어주는 정화 의식이다. 4. 조전점안(造錢點眼) : ‘조전’은 명부(冥府, 저승)에서 사용할 돈을 말하며 ‘점안’은 돈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외부에서 오는 물질적 축복 속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5. 신중작법(神衆作法) : 의식이 잘 진행되도록 초청된 모든 성스러운 영가에게 다례를 제공한다. 6. 괘불이운(掛佛移運) : 의식의 주인이며 법화경을 가르칠 석가모니 부처, 모든 부처와 불보살이 불법에 따라 영접을 받는다. 7. 상단권공(上壇勸供) : 부처와 보살이 초청된 상태에서 식사를 공양한다. 이 의식에서는 부처와 보살의 자비로운 은혜로 모든 중생이 행복을 얻고 부처의 진리의 빛이 고통 받는 세계에서 빛날 것을 기원한다. 8. 법문(法門) : 부처를 대신하여 승려가 의식의 목적을 재확인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설법한다. 승려는 청중이 진리의 문에 이르도록 법문을 전한다. 9. 식당작법(食堂作法) : 공양 의례는 부처와 불보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식에 참석하는 승려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을 위한 것을 상징하며, 이 의식을 행함으로써 부처가 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10. 중단권공(中壇勸供) : 의례가 잘 진행되도록 의식에 참석중인 모든 신중을 청하여 모시는 의례이다. 또한 의례에 참석한 모든 이에게 축복을 주기를 청한다. 11. 시식(施食) : 의식의 참석자들은 부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죽은 이들은 극락으로 가게 되었으니 기뻐하는 의식이다. 이 의례는 슬프기 보다는 행복한 의식으로써 떠난 자들을 위해 거행되며 떠난 자들의 극락왕생을 축하하며 기뻐하기 위함이다. 12. 봉송(奉送) 및 소대배송(燒臺拜送) : 의식이 시작될 때부터 모든 중생은 공손한 찬양을 받는데 봉송도 이에 걸맞게 진행된다. 봉송은 죽은 이들이 머물 마지막 종착지에 영향을 주는 마지막 단계이다.
South Korea 2009 -
처용무 (處容舞)
처용무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처용무란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에서 5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궁중 무용을 일컫는다. 때문에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의 궁중 무용으로는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탈을 쓰고 춤을 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1971년 1월 8일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처용무는 남자 무용수들이 연행(演行)하는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춤이다. 통일신라 말기(B.C. 57년~A.D. 935년), 헌강왕(憲康王)이 행차하여 한반도 남동쪽 울산시 인근 개운포(開雲浦, 오늘날의 황성동 세죽마을)에 이르렀다. 왕이 환궁 차비를 하였을 때 짙은 운무(雲霧)가 낀 하늘을 보고 괴이하게 여겨 좌우에 그 이유를 물으니, 일관(日官)이 “이는 동해(東海)의 용(龍)이 부리는 조화이니, 마땅히 좋은 일을 행하여 이를 풀어야 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왕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짓게 하자, 먹구름이 걷히고 동해 위로 용이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솟아올라 춤을 추었다. 그 중 ‘처용(處容)’이라는 이름의 한 아들이 헌강왕을 따라 수도인 경주로 와서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관직을 얻어 머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처용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역신이 그의 아내를 범하려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에 처용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어 무릎을 꿇고 앉아 사과하였다. 이때부터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붙여 악귀를 몰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고려 왕조 후기(918년~1392년)까지 처용무는 무용수 1인이 공연하였으나, 조선 왕조 세종(재위 1418년~1450년) 때에 이르러 무용수 5명이 춤을 추게 되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따르면 음력 섣달그믐날, 묵은해의 역신과 사귀를 쫓기 위해 행하는 나례 의식에서 두 차례에 걸쳐 처용무를 추었다고 한다. 5명의 무용수는 각각 서쪽·동쪽·북쪽·남쪽·중앙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파란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의 의상을 입었다. 처용무에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근거하여 악운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어 장엄하고 활기찬 춤사위에서 씩씩하고 호방한 기운을 엿볼 수 있다. 처용무는 수제천(壽齊天, ‘하늘만큼 영원한 생명’) 음악에 맞추어 왕을 향해 나아가 “신라성대소성대(新羅盛代昭盛代, ‘밝고 번성한 시대, 신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처용가〉의 첫 수를 ‘언락(言樂)’이라는 서정적인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무용수들은 왕을 향해 인사하고 향당교주(鄕唐交奏, 향악(鄕樂)과 당악(唐樂)을 번갈아 연주)에 맞추어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다. 세영산(細靈山)의 느린 가락에 맞추어 무용수들은 정방형을 이루며 산작화무(散作花舞, ‘꽃의 형태로 흩어짐’)를 춘 후 오른쪽으로 돈다. 십자형으로 대열이 바뀌면 음악도 삼현도드리(3개 현악기로 연주하는 느린 6/4 박자 음악)로 변경된다. 수양수무(垂揚手舞, ‘팔을 들어 올려 흔들며 추는 춤’)와 무릎디피무(‘무릎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는 춤’)을 마친 후 5인의 무용수는 대열을 원형으로 바꾸고 왼쪽으로 돈다. 다시 한 번 일렬로 대열을 바꾸고 나서 무용수들은 ‘산하천리국(山河千里國, ‘머나먼 산 또는 평야로’)’으로 시작하는 〈처용가〉를 다시 가곡 우편(羽編) 가락에 맞추어 부른 후 송구여지곡(頌九如之曲, 도드리의 일종)에 맞추어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잎과 흐르는 물’)를 추며 무대에서 퇴장한다. 처용 탈은 팥죽색 피부에 치아가 하얗고, 납 구슬을 단 주석 귀고리가 달려 있다. 검은색 사모에는 모란 2송이와 복숭아 열매 7개를 꽂아 장식한다. 팥죽색과 복숭아 열매는 벽사(辟邪, 잡귀를 물리침)를, 하얀 모란은 진경(進慶, 기뻐할만한 일로 나아감)을 상징한다.
South Korea 2009 -
농악(農樂)
농악은 201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농악은 타악 합주(때때로 관악기가 포함되기도 함), 행진, 춤, 연극, 기예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 공연 예술 장르이다. 농악은 마을신과 농사신을 위한 제사, 액을 쫒고 복을 부르는 축원, 봄의 풍농 기원과 추수기의 풍년제, 마을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업을 위한 재원 마련 행사, 그리고 전문 농악패들에 의한 여흥 등 실로 다양한 목적으로 연행되어 왔다. 마을의 흥겨운 행사치고 화려하게 치장한 농악대의 떠들썩한 음악과 춤으로 마무리되지 않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농악 공연이 북돋는 흥겨운 기분, 즉 신명은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두드러진 감정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음악의 장단은 흔히 3소박과 혼박, 혼소박 등 불균등 구조의 복잡한 리듬이 많이 사용된다. 쇠와 가죽으로 음색을 내는 꽹과리와 장구가 주요 리듬을 연주하는 한편, 징과 북은 단순한 리듬으로 음악에 강세를 만들어준다. 소고를 연주하는 연행자들은 음악 연주보다는 춤에 더 치중한다. 농악 춤은 개인의 기량을 보여주는 춤과 함께 단체가 만드는 진짜기, 상모놀음 등이 포함된다. 탈을 쓰거나 특별한 옷차림을 한 잡색들이 재미난 촌극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희가 진행되고, 버나돌리기나 어린 아이를 어른 연행자의 어깨 위에 태워 재주를 보여주는 무동놀이와 같은 기예도 함께 연행된다. 농악은 기층민들에 의해 가장 빈번하게 연행되고 향유되지만 신명나는 공연을 보여주는 전문연희패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전문적인 레퍼토리는 타악 4중주에 해당하는 ‘사물놀이’와 넌버벌(non-verbal) 연극 ‘난타’와 같은 작품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런 시도는 음악적인 요소만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에 국내외에서 보다 광범한 청중의 감성에 다가갈 수 있다.
South Korea 2014 -
종묘제례(宗廟祭禮) 및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는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으로 선정된 후,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통합되었다. 서울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 왕조(14세기~19세기)의 조상들에게 바치는 유교 의례를 하는 곳이다. 종묘제례(宗廟祭禮)란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으로, 조선시대의 나라제사 중 규모가 크고 중요한 제사였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나라에 공적이 있는 공신들의 신주를 모셔 놓은 사당으로, 사직(社稷)과 더불어 국가의 근본을 상징하는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이다. 종묘 정전의 19개 신실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49위)가 모셔져 있으며, 영녕전 16실에는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34위)를 봉안하고 있다. • 종묘제례 종묘제례는 이러한 조상의 영혼이 안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당인 종묘에서 수행하며, 조상의 영혼이 영원한 평화를 누리도록 간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종묘제례는 왕족의 후손들이 제례를 조직하며 음악, 무용,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의례가 봉행되는 동안, 제관들은 의례복을 입으며 왕은 왕관을, 다른 이들은 관을 써서 복장을 갖추고 음식과 술을 제기에 담아 조상에게 바친다. 종묘제례는 왕실에서 거행되는 장엄한 국가 제사로서, 임금이 친히 받드는 존엄한 길례(吉禮)였다. 유교사회에서는 길례·흉례(凶禮)·군례(軍禮)·빈례(賓禮)·가례(家禮)의 다섯 의례(五禮)가 있는데 그중 길례인 제사를 으뜸으로 여겼으며, 이를 ‘효’ 실천의 근본으로 삼았다. 유교가 국가의 근본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조상에 대한 숭배를 인간의 도리이자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법도로 여겼으며 이러한 법도를 실행하는 제사를 특히 중시하였다. 그래서 예로부터 종묘와 사직을 세우고 나라를 건국하고 번영시킨 왕과 왕실의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국가 발전에 공헌한 문무 대신들에게 제사를 드렸다. 종묘제례의 전통은 조상신 숭배와 효의 개념에 관한 고대 중국 문헌에서 유래하지만 중국에서는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 유교 의례의 고유한 사례로 남아 있다. 종묘제례는 크게 정시제(定時祭)와 임시제(臨時祭)로 나뉘며, 계절에 따라 햇과일이나 곡식을 올리는 천신제(薦新祭)도 있었다. 정시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첫달인 1월·4월·7월·10월과 납일(臘日, 12월에 날을 잡아 지내는 섣달제사)에 지냈으며,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지냈다. 종묘제례는 해방 이후 한때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1969년부터 전주리씨대동종약원이 행사를 주관하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종묘제례는 제사를 지내는 예법과 예절에 있어서 모범이 되는 의식이기 때문에 제례는 매우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의례의 절차는 15세기에 정해졌으며 오늘날까지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종묘제례의 절차는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도록 하는 절차, 신을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절차를 보면 선행절차 → 취위(就位, 제사가 시작하기 전에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배치됨) → 영신(迎神, 조상신을 맞이함) → 신관례(晨祼禮, 왕이 제실까지 가서 향을 피워 신을 맞아들임) → 진찬(進饌, 음식과 고기를 드림) → 초헌례(初獻禮, 초헌관이 술을 올리고 절하며 축문을 읽음) → 아헌례(亞獻禮, 신에게 둘째 술잔을 올림) → 종헌례(終獻禮, 마지막 술잔을 올림) →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 → 철변두(撤籩豆, 제상에 놓인 고기나 과일을 거둠) → 송신(送神, 조상신을 보냄) → 망료(望燎, 제례에 쓰인 축문과 폐를 태움) → 제후처리(祭後處理)의 순서로 진행된다. 종묘제례는 최고의 품격으로 유교절차에 따라 거행되는 왕실의례이며, 이를 통해 동양의 기본이념인 ‘효’를 국가차원에서 실천함으로써 민족공동체의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와 함께 종묘라는 조형적 건축공간에서 진행되는 종묘제례의 장엄하고 정제된 아름다움은 자연과 어우러진 동양적 종합예술의 정수이며, 5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한국의 소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이다. •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종묘제례가 봉행되는 동안 연주되는 음악으로 기악(樂)과 노래(歌)에 춤(舞)이 함께 연행된다. 음악은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보태평과 정대업 11곡이 한국의 전통 악기로 연주된다. 종묘제례악은 편종, 편경, 방향(方響)과 같은 타악기가 주선율을 이루고, 여기에 당피리·대금·해금·아쟁 등 현악기의 장식적인 선율이 더해진다. 이 위에 장구·징·태평소·절고·진고 등의 악기가 더욱 다양한 가락을 구사하고 노래가 중첩되면서 종묘제례악은 그 어떤 음악에서도 느끼기 어려운 중후함과 화려함을 구사한다. 정전 앞 계단 위(상월대)에서 노랫말이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등가(登歌)라 하고, 계단 아래 뜰(하월대)에서 노랫말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은 헌가(軒架)라고 부른다. 악기 편성은 시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의 간결하고 힘찬 노래는 위대한 국가를 세우고 발전시킨 왕의 덕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종묘제례악이 연주되는 동안 문치와 무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용佾舞(일무)인 문무(文舞)와 무무(武舞)가 곁들여 진다. 무용의 문무와 무무는 8줄로 구성된 64명의 무용수가 추며, 유교 문헌에 나오는 대로 대립하지만 서로 보완적인 음(陰)과 양(陽)을 표현한다. 문무는 역대 선왕들의 문덕을 기리는 춤으로 조화롭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보태평지악에 맞추어 왼손에는 피리종류인 약을 오른손에는 깃털을 단 적(翟)을 들고 춤을 추는 데 왼쪽으로 첫걸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무는 양을 상징한다. 무무는 선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춤으로 정대업지악에 맞추어 나무로 만든 칼과 창, 활과 화살을 들고 추며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며 음을 상징한다.
South Korea 2008
ICH Materials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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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론조로
조론조로는 느긋하게 걸어가는 말 위에서 여러 커플이 춤 추는 모습을 묘사한다. 조론조로 춤은 몽고 서부에서 유래한 민속 무용인 비이 비옐기(Bii Biyelgee)에서 유래했다. 말과 관련된 비옐기인 조루 모리(Jooroo Mori, 느리게 걷는 말), 조논 하르(Jonon Khar-Noble Black), 잘람하르(Jalam Khar, 검은 말), 모리니 야브달(Moriny Yavdal, 말의 걸음걸이)은 고대로부터 오이라트족(Oirat)에게 전해져 내려와 지금도 널리 퍼져있다.\n\n비이 비옐기는 몽골 민속 무용의 뿌리로, 유목 생활에서 비롯된 춤이다. 몽골의 여러 민족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옐기 춤을 전승해왔다. 저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비옐기 춤을 추며, 그 이름도 모두 다르다. 말 젖(우유)을 뿌리는 동작이 특징적인 차잘(Tsatsal) 비옐기, 세수나 머리 빗기, 직물 짜기, 활쏘기 같은 일상의 동작을 묘사한 운드센(Undsen) 비옐기, 말을 타고 느리게 걷는 동작을 표현하는 조루 모리(Joroo Mori) 비옐기, 머리나 손 위에 우유를 담은 컵을 올려 놓고 춤을 추는 컵(Jamal Khar) 비옐기, 예술성과 심미성에 중점을 둔 우브르무츠(Uvurmuts) 비옐기, 이 밖에 노래를 곁들이는 비옐기도 있다. 몽골 밖에서는 러시아의 '카드릴', 우크라이나의 '고파크', 조지아의 '리제켄카' 춤이 비옐기 계열에 속한다.\n\n전통적으로 비옐기의 무대는 게르 안에 있는 난로 주변의 좁은 공간이었다. 실내에서 관객에게 먼지나 오염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주로 가슴, 어깨, 머리, 손목을 이용해 모든 안무를 소화한다. 다리는 반쯤 안거나 교차해서 오로지 지탱하는 역할하며, 팔을 들고 어깨를 흔드는 것이 춤 동작의 특징이다.\n\n비옐기는 단지 몸짓 뿐 아니라 재치, 감정, 표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판토마임의 형식을 가미한 공연이다. 숙달하는데 특별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하다. 비옐기를 출 때는 그 사람의 영혼도 노래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몽골 사람들에게 이 춤은 의미가 있다. 다양한 부족과 공동체가 어울려 살아가는 몽골 사회에서 비옐기는 단순한 춤을 넘어 몽골 유목민의 관습과 삶을 반영한 문화인류학적 자산이자 서로 다른 민족 공동체를 이어주는 구심이다.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큰 소수 민족인 바야드(Bayads)족 사람들은 비옐기 춤을 추며 손님을 맞이하는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n\n한 때 비옐기 춤은 전수자와 공동체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를 겪었으나 2009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된 후 유네스코 아태무형센터와 몽골 정부의 문화유산보호 노력으로 수련생과 전수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후구수 전통 민속 예술 앙상블(Khugusuu Ensemble of Traditional Folk Arts)이 몇 개월간 몽골의 21개 도(아이막)에 있는 5천여 명의 무용수들에게 비옐기를 훈련시킨 뒤 2013년 7월 10일 동시에 공연하여 세계 기네스 신기록에 오르기도 했다.\n\n출연자: 몽골국가가무예술원\n예술감독: Tseden-Ish Altangerel\n안무가: Davaakhuu Altangerel
Mongolia -
조론조로
조론조로는 느긋하게 걸어가는 말 위에서 여러 커플이 춤 추는 모습을 묘사한다. 조론조로 춤은 몽고 서부에서 유래한 민속 무용인 비이 비옐기(Bii Biyelgee)에서 유래했다. 말과 관련된 비옐기인 조루 모리(Jooroo Mori, 느리게 걷는 말), 조논 하르(Jonon Khar-Noble Black), 잘람하르(Jalam Khar, 검은 말), 모리니 야브달(Moriny Yavdal, 말의 걸음걸이)은 고대로부터 오이라트족(Oirat)에게 전해져 내려와 지금도 널리 퍼져있다.\n\n비이 비옐기는 몽골 민속 무용의 뿌리로, 유목 생활에서 비롯된 춤이다. 몽골의 여러 민족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옐기 춤을 전승해왔다. 저마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비옐기 춤을 추며, 그 이름도 모두 다르다. 말 젖(우유)을 뿌리는 동작이 특징적인 차잘(Tsatsal) 비옐기, 세수나 머리 빗기, 직물 짜기, 활쏘기 같은 일상의 동작을 묘사한 운드센(Undsen) 비옐기, 말을 타고 느리게 걷는 동작을 표현하는 조루 모리(Joroo Mori) 비옐기, 머리나 손 위에 우유를 담은 컵을 올려 놓고 춤을 추는 컵(Jamal Khar) 비옐기, 예술성과 심미성에 중점을 둔 우브르무츠(Uvurmuts) 비옐기, 이 밖에 노래를 곁들이는 비옐기도 있다. 몽골 밖에서는 러시아의 '카드릴', 우크라이나의 '고파크', 조지아의 '리제켄카' 춤이 비옐기 계열에 속한다.\n\n전통적으로 비옐기의 무대는 게르 안에 있는 난로 주변의 좁은 공간이었다. 실내에서 관객에게 먼지나 오염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주로 가슴, 어깨, 머리, 손목을 이용해 모든 안무를 소화한다. 다리는 반쯤 안거나 교차해서 오로지 지탱하는 역할하며, 팔을 들고 어깨를 흔드는 것이 춤 동작의 특징이다.\n\n비옐기는 단지 몸짓 뿐 아니라 재치, 감정, 표정을 요구하는 일종의 판토마임의 형식을 가미한 공연이다. 숙달하는데 특별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하다. 비옐기를 출 때는 그 사람의 영혼도 노래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몽골 사람들에게 이 춤은 의미가 있다. 다양한 부족과 공동체가 어울려 살아가는 몽골 사회에서 비옐기는 단순한 춤을 넘어 몽골 유목민의 관습과 삶을 반영한 문화인류학적 자산이자 서로 다른 민족 공동체를 이어주는 구심이다. 몽골에서 세 번째로 큰 소수 민족인 바야드(Bayads)족 사람들은 비옐기 춤을 추며 손님을 맞이하는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n\n한 때 비옐기 춤은 전수자와 공동체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를 겪었으나 2009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재된 후 유네스코 아태무형센터와 몽골 정부의 문화유산보호 노력으로 수련생과 전수생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후구수 전통 민속 예술 앙상블(Khugusuu Ensemble of Traditional Folk Arts)이 몇 개월간 몽골의 21개 도(아이막)에 있는 5천여 명의 무용수들에게 비옐기를 훈련시킨 뒤 2013년 7월 10일 동시에 공연하여 세계 기네스 신기록에 오르기도 했다.\n\n출연자: 몽골국가가무예술원\n예술감독: Tseden-Ish Altangerel\n안무가: Davaakhuu Altangerel
Mongo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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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무형유산 NGO 컨퍼런스 : 위기의 시대, 무형유산과 회복탄력성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유네스코 인가 NGO 협의체인 무형유산 NGO 포럼과 공동으로 11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 간 ‘2020 무형유산 NGO 컨퍼런스’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전 세계 10개국 11명의 선정된 발표자를 포함한 15명의 참가자들은 코로나 시대 변형, 적용된 각 국의 다양한 활동 사례와 사업 경험을 공유하고, ‘뉴 노멀’ 시대 무형유산의 회복탄력성을 위한 연대를 제안하였다.\n한국어 자료는 149쪽부터 수록되어있다.\n\n세션 1: 코로나19 시대,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NGO의 역할\n\n특별강연 1: '회복탄력성 체계 분석과 무형유산, NGO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도전과제'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경제협력개발기구 멕시코지부)\n1. '무형유산 보호와 웰빙을 위한 무형문화유산 관리 방안' (카롤리나 베르무데즈, 에트놀라노재단)\n2. '홍콩 윤롱지구 공동체 기반 무형유산을 위한 거시적 발전 모델 구축' (카이퀑 초이, 생명회복기금)\n3. '코로나 대항 매개체로서의 짐바브웨 토착지식' (알링턴 엔드로브, 아마구구국제유산센터)\n4. 'ARHI의 전통염색기술 활성화 노력' (디비야 보라, 사회과학연구소)\n\n세션 2: 코로나19가 NGO 활동에 가져온 변화\n\n1. '코로나19, ICCN 소속 도시들의 대응방안' (훌리오 나세르, 무형문화도시연합)\n2. '코로나 시대 예술과 문화교육 혁신' (제프리 풀린, 크리에이티브 제너레이션)\n3. '파키스탄 칼라샤 지역의 무형유산을 통해 보는 유산교육 촉진' (지아수딘 피르 & 미자 우바이드, THAPP)\n4. '온라인 활동으로의 전환: NGO와 무형유산 공동체 간 디지털 간극'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n\n세션 3: 통섭: 무형유산 교육 분야 원형과 전형\n\n특별강연 2: '지역 불균형 : 2003년 협약에 따른 인가 NGO의 균형 대표성 문제' (마티 하카마키, 핀란드민속음악원)\n1. '포스트 코로나, 공예 부문 공동체 회복탄력성 구축' (조셉 로, 세계공예협회)\n2. '예술과 영향력: 문화분야 기업 참여 과제' (니콜라스 포젝, 콜롬비아대학교)\n3. '청년 교육 강화를 통한 공동체 역량강화: 알프스 남서부의 무형유산 사례를 통하여' (알레시오 레 &지울리아 아반자, 산타가타문화경제재단)\n\n
South Korea 2020 -
제3차 아시아태평양무형유산고등교육 네트워크(APHEN-ICH) 국제세미나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다양성과 동질성
여러 국가에 걸쳐 분포하는 무형유산의 기본적 특성과 문화 다양성 보존의 필요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무형유산은 국경을 초월한 공유성을 지닌다는 인식의 전환과 확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의 경계를 국경과 동일시하는 근대 국민국가 체계로의 전환은 ‘국가 내 문화’ 또는 ‘경계 내 문화’라는 개념을 형성하였으며, 문화의 소유권이 국가로 귀속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n\n문화의 배타적 소유권 개념은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도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문화유산과 문화영역을 공유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갈등이 과도한 등재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쟁 분위기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과 이를 통한 평화 실현이라는 유네스코의 근본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지역 협력을 증진하며 국제 보호 활동이라는 협약의 취지를 되살리는 동시에, 국가 간 갈등에 대한 예방과 이미 발생한 갈등의 해결방안으로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유 무형유산의 공동등재를 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공동등재를 강조하며, 문화소유권으로 인한 국가 간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 3차례에 걸쳐 이행지침을 개정하였다. 또한, 이를 통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한 연계성이 지역적 수준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n\n이와 더불어 당사국은 소지역 및 지역적 수준에서 협력하도록 관련 공동체, 전문가, 전문센터, 연구소가 특히 그들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 무형유산에 관하여 연계성을 발전시키도록 장려되고 있다. 특히 2018년 11월 모리셔스에서 개최된 제13차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씨름이 남북 공동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무형유산이 민족 간 문화적 이해와 연대를 증진하고 평화 구축에 이바지함을 보여준다. 비단 공동등재된 무형유산뿐만 아니라 공유성이 무형유산의 근간임을 인정할 때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할 수 있으며, 국가 간 평화 달성의 초석이 됨을 인지해야 한다.\n\n따라서 본 세미나에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무형유산의 동질성과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옻칠 등 아태지역에서 연행되고 있는 비슷하지만 다양한 무형유산을 살펴보며 무형유산이 문화 다양성의 시각을 달성하고, 포괄적 국제협력과 평화를 실현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한다.
South Korea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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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무형문화유산꾸리에 한국어판 VOL.19 (전통 가면무용)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아태지역 무형유산에 대한 계간지인 ICH 꾸리에를 2009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n\n「Windows to ICH」라는 제목으로, 각 호마다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제19권의 테마는 「전통 가면무용」입니다.
South Korea 2014 -
아태무형문화유산꾸리에 한국어판 VOL.44 (건강한 삶을 위한 전통지식)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아태지역 무형유산에 대한 계간지인 ICH 꾸리에를 2009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습니다. \n\n「Windows to ICH」라는 제목으로, 각 호마다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제44권의 테마는 「건강한 삶을 위한 전통지식」입니다.
South Korea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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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 COURIER 발간 10주년 기념 특별 좌담회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는 지난 2019년 8월 30일 대한민국 전주에서 ICH Courier 발간 10주년 기념 특별 좌담회를 개최했다. 편집장 박성용 정책개발실장이 회의를 이끌었고 특별 손님으로 편집자문위원 가우라 만차차리타디푸라(Gaura Mancacaritadipura),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네스코 뉴스 편집장 김보람, 유네스코 알마티 사무소 문화전문관 아이굴 칼라포바(Aigul Khalafova), 유네스코 무형유산 퍼실리테이터 푸티탄 리니나(Phuttitarn Linina)을 초청하였으며, 센터의 금기형 사무총장, 마이클 피터슨 커뮤니케이션팀장, 김민정 선임전문관이 참가하였다. 금기형 사무총장의 개회사로 좌담회 문을 열었다.Year2019Nation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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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각국의 석가탄신일을 기념하는 방법전 세계 불교신자들에게는 석가탄신일이 1년 중 가장 신성한 날일 것이다. 석가탄신일은 고타마 싯다르타(Siddhartha, Gautama), 즉 석가모니의 탄생 및 깨달음, 또 입멸(入滅)을 기리는 날이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5월의 첫 보름날 또는 음력 4월 8일을 석가탄신일로 한다.\n\n문화적 차이에 따라 이 날을 기리는 의식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문화권에는 공통적인 관습들이 존재한다.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석가탄신일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탄신행사로서, 2,500년 동안이나 이어질 수 있었다. 기도, 향 피우기, 음식 보시, 기부 등의 전통적인 관습과 더불어 오늘날의 퍼레이드, 장식 가마 행렬과 같은 인기 축제는 이 오래된 탄신행사에 현대적 감성을 더하고 있다.\n\n석가모니 탄생을 기리는 발걸음, 네팔 성지순례\n네팔은 기원전 5~6세기경 고타마 싯다르타(Siddhartha, Gautama)가 탄생한 곳이다. 네팔의 붓다자얀티(Buddha Jayanti)축제는 석가모니의 탄생과 깨달음, 입멸을 기리며 하루 종일 계속된다. 붓다가 탄생한 룸비니의 마야데비사원(마야 데비는 석가모니의 어머니 이름에서 유래)에는 다양한 문화 및 종교의 순례자를 비롯한 국내외 승려들이 찾아와 기도를 올리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사원의 축제를 즐긴다.\n\n카트만두에서는 수 천명의 신자들이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사원과 네팔에서 가장 큰 보다나트(Boudhanath)불상을 찾아 형형색색의 연주자 및 댄서 행렬과 함께하는 한편, 티베트 승려들은 이곳이 과거 라싸(Lhasa)와 카트만두 간 교역로였던 것을 떠올리며 기도를 올리고 봉헌물을 바친다. 보름달은 항상 상서로운 기운을 주지만, 버터 램프(투명한 유리 볼 안에 야크 버터를 넣어 불을 밝힌 램프)가 빛나고 마니차(불교 경전이 들어 있는 원통형의 도구)가 도는 보름달 아래에서의 만트라(眞言, 불교의 주문)는 특별한 기운을 내뿜는다.\n\n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얻는 깨달음, 미얀마 케손축제\n석가탄신을 기리기 위한 보름달 케손축제(Kasone Festival)는 4월 중순의 미얀마 신년 띤잔(Thingyan)축제에 비해 조용히 진행된다. 케손축제에서도 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교 신자들은 석가모니가 2,500년 전 인도 보드가야(Bodh Gaya)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을 기리며 보리수 나무에 물을 뿌린다.\n\n미얀마에서는 특히 보름날에 불상에 물을 뿌리는 것이 관습인데, 이는 정화, 선의, 행운을 상징한다. 케손은 특별한 보름달 축제로 전국의 사원 또는 불탑에서 불경을 외운다. 양곤의 쉐다곤 대탑(Shwedagon)에서는 신자들이 하얀 옷을 입고 불경을 외우며 시계방향으로 탑돌이를 하면서 자신이 태어난 요일에 해당하는 동물상에 물을 뿌린다.\n\n‘물’의 테마에 맞춰 건기에는 호수와 강에 물고기를 방생한다. 양곤의 깐도지(Kandawgyi)호수와 인야(Inya)호수가 방생 장소로서 인기가 많다.\n\n소원을 담은 빛의 기도, 한국 연등회\n한국에서는 석가탄신일을 기리기 위한 축제로 연등회가 가장 유명하다. 연등회는 보통 공휴일인 석가탄신일 전 주의 토요일 밤 도심에서 진행하는데, 축제 동안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등불이 행렬을 이루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n\n연등회는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제122호), 오늘날 한국의 전통 및 현대문화가 절묘하게 뒤섞인 행사로 연중 최고 인기 축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n\n한국의 불교신도들은 석가탄신일 며칠 전부터 근처 절을 찾아 소원을 담은 연등을 단다. 연등에 건강, 부, 합격 등 기원을 담은 종이를 붙이는 것이다. 석가탄신일(올해 5월 3일)에는 절을 찾아 꽃, 향, 초 등을 바치며 기도를 한다. 어둠 속 자비를 상징하는 연등은 부처의 현현(顯現)과도 같다.\n\n사진: Buddhist monks march through downtown Seoul during a celebration for Buddha's birthdayYear2017NationSouth Korea,Myanmar ,Nep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