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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은율탈춤, 무형유산 디아스포라의 현재와 미래
차부회 · 차은선
Introduction
 개항의 도시 인천은 하늘길과 바닷길을 통해 다양한 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이 모이는 도시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이주한 개인의 이야기는 역사가 되어 인천에 켜켜이 쌓인다. 인천은 곧 디아스포라의 도시이다. 그리고 그곳에 은율탈춤이 있다.

 

 은율탈춤은 본래 북한 황해도 은율 지방 일대에서 연행되던 민속예술이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남한으로 이주한 황해도 실향민은 인천이란 새로운 터전에서 그들이 향유하던 무형유산을 통해 공동체를 기억하고 공동체를 만들었다. 은율탈춤의 특징은 인천에 이주한 황해도 실향민이 세대를 거쳐 탈춤을 전승한다는 사실이다. 은율탈춤 재연에 기여한 故양소운 봉산탈춤 명예보유자, 차부회 보유자, 차은선 이수자까지 3대에 걸쳐 은율탈춤은 전승되고 있다.

 

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차부회 보유자

안녕하세요, 국가무형문화재 61호 은율탈춤보존회 차부회 보유자입니다. 1978년 은율탈춤 보존회 활동을 시작하고, 2014년 7월 17일 보유자로 인정되어 43년째 전승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차은선 이수자

안녕하세요, 국가무형문화재 61호 은율탈춤보존회 차은선 이수자입니다. 어려서부터 전수관을 놀이터 삼아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탈춤을 시작했고, 2010년 이수자 시험을 통해 이수자가 되었습니다.


차부회 보유자(오른쪽)와 차은선 이수자(왼쪽). 한국은 무형문화재법을 근거로 국가무형문화재의 보유자 및 보유단체, 전승교육사, 이수자 등을 인정하고 전승 활동을 지원한다.

Q2. 은율탈춤이 인천에서 재연되고 인천의 무형문화재로 자리 잡은 과정이 궁금합니다.

차부회 보유자

황해도에서 인천으로 피난 나오신 양소운, 장용수, 장교헌, 전대주(황해도 무속인) 등 선생님 몇 분이 모여 1962년도부터 은율탈춤 재연을 논의하셨고, 1968년도부터 재연 작업을 시작하셨습니다. 1972년에 재연되었고, 1978년 2월 23일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민속은 서울을 전승지로 지정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황해도 실향민들과 함께 활동하고 계시는 인천을 전승지로 고집하셨습니다. 1982년도에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은율탈춤 전승지로 지정되었고, 1984년 4월 4일 인천 수봉공원에 은율탈춤 전수관을 개관한 이래로 은율탈춤 보존회는 인천을 중심으로 전승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Q3. 차부회 보유자님께서 어머님의 길을 따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차부회 보유자

무조건 탈춤이 좋아서 탈춤을 시작했습니다. 재수생 시절에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은율탈춤 공연에서 팔목중이 하늘 위로 손을 뻗는 춤사위를 보며 탈춤에 빠져들었고, 그 길로 탈춤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반면 예술인으로서 대쪽같은 삶을 사신 어머니는 그 길이 얼마나 고단한지 아셨기에 전통예술의 길을 반대하셨습니다. 어머니 모르게 탈춤 동아리 활동을 하던 중에 공연을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너 도대체 왜 탈춤을 하려 하느냐?” 하시기에 “그럼 어머니는 왜 평생 탈춤을 하셨나요?” 여쭈었더니 대답을 못 하시더군요. “너는 탈춤을 업으로 하지 말고 취미로 해라” 하셨지만, 대학 나온 젊은 전승자가 전통예술로 삶을 영위하는 모범을 만들어보자 결심하고 탈춤판에 뛰어들어 40년 넘게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은율탈춤 - 여섯마당
은율탈춤은 제1과장 사자춤, 제2과장 상좌춤, 제3과장 팔목중춤, 제4과장 양반춤, 제5과장 노승춤, 제6과장 미얄할미영감춤 등 총 여섯 마당으로 구성된다.

제1과장 사자춤

제2과장 상좌춤

제3과장 팔목중춤 - 먹중(黑僧)은 ‘속이 검은 중’이라는 뜻의 파계승으로 조선 후기 불교의 타락을 풍자하는 캐릭터다.

제4과장 양반춤

제5과장 노승춤

제6과장 미얄할미영감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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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차은선 이수자님께서 아버님의 길을 따르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는지요?

차은선 이수자

아버지께서 보존회에서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맡고 계시다 보니 어려서부터 은율탈춤 전수관을 놀이터 삼아 자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삶에 은율탈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뿐 특별한 계기는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께서 은율탈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알기 때문에 저 또한 은율탈춤에 깊은 마음이 생겨 전승자로서 길을 걷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전통예술만이 저의 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진로 선택 과정에서 공연예술에 관심이 생겨 공연연출을 전공했습니다. 공연연출을 전공하며 제 작품에 탈춤을 비롯한 전통예술을 활용하면 큰 강점이 되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믿음으로 탈춤 활동을 지속하였고 2010년에 이수자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수자, 기획자, 연출가, 예술강사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Q5. 이수자님은 전승자로서 마음가짐에 변화가 있었던 경험이 있나요?

차은선 이수자

이수자 시험을 준비하며 전승자로서 제 역할과 책임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이수자 시험 질문 중에 은율탈춤을 어떻게 전승할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답변을 고민하며 탈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반영할 때 진정성을 갖는데, 탈춤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순간 그 의미가 고정되고 멈춰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탈춤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담는 문화로 향유되도록 전승 활동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Q6. 인천 지역을 기반으로 전승 활동하는 보유자님의 대표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차부회 보유자

대표 활동으로 ‘은율탈춤 정기 강습회’가 있습니다. 1983년 대학교 4학년 시절에 체계적인 회원 관리와 전승 교육을 위해 정기 강습회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장용수 선생님께서 지원해주신 8만원으로 인천 탑동의 제1공보관 전시실을 대관하고 총 56명의 강습생을 모아 제1회 강습회를 개최했습니다. 제1회 강습회의 성공은 정기 강습회의 디딤돌이 되었고, 강습회는 현재까지 은율탈춤 보존회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기 강습회를 통해 공식 회원과 강사 개념이 단체 내에 정착함으로써 보존회가 일종의 친목 단체에서 사단법인 조직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Q7. 시기별 전승 활동의 변화 혹은 특징이 궁금합니다.

차부회 보유자

어린이 전승 교육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80년대 전승 교육 초창기에는 탈춤은 어려워서 어린이는 가르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어린이는 교육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90년대부터 어린이에게 탈춤을 가르쳐 보았는데, 아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공연을 잘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 의상이 없어서 성인 의상을 핀으로 줄여 입힐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1997년 은율탈춤 어린이반 ‘탈사랑’ 창단을 통해 어린이 교육을 본격화했습니다. 이때 무형유산의 전승에서 어린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탈사랑’ 출신 청년들이 현재까지 보존회 활동을 하는 덕분에 보존회가 활력을 갖고 발전하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탈사랑' 공연 모습

차은선 이수자

2010년대 들어서는 탈춤에 대한 전수 교육에서 탈춤을 통한 창작 교육으로 교육 내용이 변화했습니다. 전수 교육은 전수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연령대에 맞게 난이도를 구분하여 원형 전수를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반면, 창작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탈춤을 창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탈춤 창작을 위해서 장단, 춤사위 등 탈춤 기초 교육이 필요하지만, 창작 교육의 본질은 탈춤을 통한 자아 표현입니다. 창작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탈춤이 현실과 유리된 문화재가 아니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로 인식하도록 교육합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창작교육 모습

Q8. 은율탈춤 전수학교 중 강화도 양사초등학교와의 인연이 인상적입니다.

차부회 보유자

양사초등학교와 인연은 대략 20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양사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은율탈춤 강의 요청을 받았는데, 강사비가 없다고 하더군요. 돈 때문에 학생들이 배우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미련스럽게 강화까지 먼 길을 가르치러 다녔습니다. 양사초등학교가 전수학교로 지정된 후에야 시비로 강사비를 받게 되었죠. 현재는 전수교육과 더불어 양사초등학교 졸업생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탈춤 동아리 ‘얼쑤’의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테두리 밖에서 탈춤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활동하는 마음이 반갑고 고마워서 기쁜 마음으로 교육을 나가고 있습니다.


  • 양사초등학교 프로그램


  • 양사초등학교 학생의 피리연주


  • '얼쑤'동아리의 연습 모습.'2021 대한민국 청소년 탈춤축제 한마당'에서 금상을 수상하였다.'

 

Q9. 이수자님의 기획자로서 활동과 대표작품이 궁금합니다.

차은선 이수자

현재 공연단체 ‘위로’의 대표로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고 있습니다. 탈춤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탈춤과 현대 삶의 연계성을 보여준 창작극 ‘미천’을 대표작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천’은 신분제도는 사라졌지만 갑과 을로 나눠진 새로운 계급 사회에서 방황하는 30대 직장인이 말뚝이 캐릭터를 통해 그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입니다. 탈춤은 말뚝이와 양반, 노승과 새색시, 미얄할미와 영감 등 시대의 문제의식이 투영된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습니다. 탈춤의 캐릭터들을 활용하여 탈춤의 해학을 살리면서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현대인의 공감대를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Q10. 2020년 국립무형유산원 이수자뎐 ‘피리! 탈춤 판 위에 서다’ 공연을 인상 깊게 관람했습니다.

차은선 이수자

탈춤의 악사가 무대의 중심에서 그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흥을 보여주고자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탈춤의 구성 요소를 활용한 다양한 기획공연을 보았지만, 악(樂)이 전면에 나선 공연은 찾기 힘들어 안타까웠습니다. 공연을 올리면서 생각보다 악이 갖는 힘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악만으로는 탈춤이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탈춤은 누구 하나 돋보일 때가 아니라 연희자와 악사가 조화를 이룰 때 그 의미가 완성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탈춤판의 개념을 현대 무대에 올리는 데 한계가 있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모든 공연은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Q11. 무형문화유산 전승자와 공연기획자 중 어느 정체성에 더 가치를 두시는지 궁금합니다.

차은선 이수자

기획자로서 정체성과 사고에 더욱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획자로서 전통의 현대적 활용에 집중을 해왔다면, 최근에는 인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 발굴에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기획자로 활동하는 공연단체 위로와 이수자로 활동하는 은율탈춤 보존회 모두 인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보니 자연스러운 변화라 생각합니다. 기획자로서 제 작품에 인천 지역의 키워드와 이슈를 녹여내는 방안을 한창 고민하고 있습니다.

 

Q12. 현재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은율탈춤을 소재로 논문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차은선 이수자

디아스포라의 도시인 인천에서 황해도 민속이었던 은율탈춤이 인천 시민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역할을 갖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2010년 이수자가 된 후부터 10년 넘게 인천의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은율탈춤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천의 학생들은 인천이 은율탈춤의 전승지이기 때문에 은율탈춤을 배우는 것인데, 문득 ‘은율탈춤은 본래 인천의 민속예술이 아니잖아?’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단순하고도 제 마음에 잠재하던 근원적인 질문을 계기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Q13. 향후 무형문화유산의 전승에 대한 기대 혹은 고민이 있다면?

차부회 보유자

전통문화가 끊임없이 계승 발전하며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정교화되길 바랍니다. 특히 젊은 전승자들과 많은 대화를 통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덧붙여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앞둔 시점에서 대중이 탈춤의 흥을 온전히 느끼고, 젊은 전승자가 마음껏 뛰노는 공간으로써 탈춤전용극장이 건립되길 바랍니다.

 

차은선 이수자

문화, 특히 무형문화유산이 의미 있으려면, 더 솔직한 말로 생존하려면 사람들이 즐기고 향유되어야 합니다. 원형보존에만 집중하면 무형유산은 대중에서 멀어지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향유 없이 매년 주어지는 보조금과 지원금에만 의존하는 현상이 무형유산의 진정한 전승과 보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청년 전승자일수록 더욱 치열하게 무형유산이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합니다.

 

Q14. 마지막으로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차부회 보유자

은율탈춤은 본래 황해도 지방의 민속이었지만 남한으로 건너온 실향민에 의해 한국과 북한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탈춤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춤이 원형이라 고집할 수 없습니다. 탈춤에서 중요한 가치가 대동과 배려입니다. 대동과 배려의 가치처럼 두 공동체가 서로 다름을 존중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젊은 전승자들이 “나는 탈꾼이다”라는 중심을 잃지 않고 프로 의식을 갖고 활동하기를 바랍니다.

Contributed by Choi Jin-a, an assistant programme specialist of  ICH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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